
최근 중앙정치나 지역정치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갈등의 표현에는 '투쟁'과 ‘선동’이 난무하다.
중앙정치에서는 3권 분립이나 경제정책, 행정시스템 등의 국가 시스템 붕괴를 두고 여당과 야당이 서로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역정치 현장에서는 자치단체 시책에 따른 지역주민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 민주화 투쟁시절 YS, DJ의‘투쟁’에 익숙했던 기자로서 실로 오랜만에 대하는‘투쟁’과 ‘투사’의 복고였다.
하지만 2025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투쟁'과‘선동’의 노선은 과연 어떤 설득력을 지니고 있을까?
과거 민주화 시절의 '투쟁'과‘선동’은 절대 권력의 횡포 속에 조직도 자금도 언론도 취약했고, 무엇보다 선거라는 민주제도의 근간이 보장되지 못했을 때 야당에 주어진 맨주먹의 부르짖음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세력은 마침내 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잡았다.
이후 우리는 매일매일 벌어지는 정권의 횡포와 억지, 국가 붕괴의 두려움에 휩싸이고 있다. 3권 분립, 경제정책, 정부조직 등 국가 시스템이 무너질 우려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국회의 3분의 2를 진보가 점유하고 야당은 겨우 100석 정도에서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은 무소불위고 야당은 백전백패다.
민주주의에서는 결국 국민의 선택, 즉 선거가 모든 것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선거다. 선거에서 국민의 마음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
국가 발전을 위해, 국민의 풍족한 삶의 영위를 위해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서 과반의 표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을 찾았던 미국 공화당의 젊은 기수 찰리 커크 라는 사람의 제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맹목적인 팬덤이나 '투쟁'과‘선동’만으로 유권자를 움직일 수 없다. 맹목적인 팬덤 정치만으로도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 우리가 다가가야 한다.”
이처럼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 중요하다.
물론 선거에 나설 투사도 있어야 하겠지만 투사보다는 책사가 더 절실한다. 그로인해 유권자의 마음을 읽고 신뢰를 얻는 현장의 후보를 선정해서 선거에 임해야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풍족한 삶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팬덤이 아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치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